지난 해 한 20대 청년의 사연이 언론에 보도돼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청년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의 공단에 들어가 모은 월급으로 9000만원 전셋집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른바 ‘인천 건축왕’으로 알려진 남모 씨 일당의 전세 사기에 걸렸고 삶의 의지를 잃은 채 건물에서 투신,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2만원만 보내달라고 부탁했고 모친이 10만원을 보내주자 “2만원만 있으면 되는데 왜 돈을 많이 넣었어. 나는 2만원만 있으면 되는데”라고 말한 뒤 며칠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전세사기를 당해 벼랑 끝에 내몰린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수원에서도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정씨 일가 전세사기사건’이다. 정씨 일가는 수원지역을 중심으로 빌라와 오피스텔 약 800채를 보유한 채 임차인들에게 225억원 상당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2021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일가족과 임대업체 법인명의를 이용해 수원시 일대에서 800세대가량의 주택을 취득한 뒤 임차인 214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225억 원을 편취한 혐의다. 정씨는 대출금이 700억원을 넘는 채무 초과 상태인데도 ‘돌려막기‘ 방식으로 임대 계약을 계속했다고 한다.

정씨 일가 전세사기에 가담한 것으로 의심되는 중개사 등 65명도 적발돼 이 가운데 24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경기도는 지난 주 브리핑을 통해 “이들이 중개한 물건은 총 540건으로 그중 70%에 해당하는 380건에 대해 초과한 중개보수를 받았으며 임차인들이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은 총 722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부동산값 하락으로 전세 보증금이 주택가격보다 높아 전세 보증금을 못 받는 이른바 ‘깡통전세’가 될 줄 알면서도 피해자들에게 매물을 중개한 대가로 고액의 성과보수를 챙겼단다. 직업윤리를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한심스럽고 분노가 치민다.

전세사기는 서민들, 특히 젊은 사회 초년생들의 미래를 빼앗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전세사기에 가담한 자들에 대한 무거운 처벌도 필요하지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 대책도 시급하다. 오래 방치하면 삶의 의욕을 잃고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기도가 전국 최초로 전세피해가구에 100만 원의 긴급생계비를 전액 도비로 지원하기로 했다. 도는 도내에서 전세피해를 본 경우 피해가구당 1회 100만원을 지원한다. 큰돈은 아니지만 “엄마 2만원만...”이라며 손을 내민 청년과 같은 형편에 처한 이들에게는 가뭄의 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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